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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학생들의 열정은 지상의 햇빛보다 눈부시다” 한꿈학교 개교 20주년 개교 20주년 맞은 한꿈학교, 탈북 청소년에게 교과 교육 더불어 신앙 교육 지원“감사와 사랑의 뜻조차 모르던 아이들이 이를 느끼고 표현할 때 보람 느껴” 의정부 어느 아파트 상가 지하의 교실. 아침 9시가 되자 학생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아침 인사를 건네며 옆자리에 앉는다. 예배가 시작되고 중국어와 한국어 순으로 말씀 봉독 후 설교말씀이 이어진다. 목사님은 설교 간 학생과 가벼운 질의도 하고, 각 학생의 이름을 외면서 “학생들이 하나님을 마음속에 모시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루를 시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감기 조심하라”는 김영미 교장선생님의 당부 말씀을 끝으로 한꿈학교의 하루가 시작된다. 2004년, 김성원 선교사는 탈북 청소년의 한국 사회 적응을 위해 방 한 칸에서 한꿈학..
너는 그 목걸이를 보고 아이처럼 좋아했다 명동 L 백화점은 참 컸다. 너무 넓어서 하마터면 길을 잃을 뻔했다. 서울에 살지만 고급스러운 백화점에 가는 건 간만이었다. 향수 냄새 가득한 1층부터 화려함에 몸이 움츠러들었다. 그렇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물러날 수 없었다. 지하 1층 액세서리 코너로 몸을 향했다. 넓고 긴 유리창 안에는 갖가지 장신구가 가득했다. 확실히 예쁜 게 비쌌다. 초승달 위에 굵은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참 예뻤다. 점원에게 티 내진 않았지만 그 가격을 듣곤 속으론 '뜨악'했다. 여기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 느린 걸음으로 재빨리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얼른 집 앞 순댓국집에서 한 그릇 하고 싶었다. 같은 브랜드더라도 인터넷엔 더 저렴한 제품이 많았다. 마음에 드는 로즈 골드 목걸이 몇 개를 골라 친구들에게 보여줬다. 친구는 왜..
아름다운가게 봉사를 마치며 봉사활동은 고등학교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에도 대입에 도움이 된다길래 억지로 했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2학년 교양필수수업을 미루고 미루다 대학 막바지에 겨우 들었다. 봉사활동 18시간까지 겸해야 해서 여간 귀찮은 수업이 아니었다. 나는 스무 시간을 아름다운가게에서 보냈다. 이 글은 아름다운가게 봉사활동에 대한 5일간의 기억이다.둘째 날. 내가 선택한 오전 반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였다. 주말 매니저분께서는 항상 봉사자들에게 작은 간식을 나눠주셨다. 첫 봉사 때는 사과 몇 조각을 나눠 주셨다. 다음에 갔을 땐 핫브레이크를 두 개씩 건네주셨다. 하나는 김밥 심부름 갈 때 먹고, 나머지 하나는 집에 가면서 먹었다. 낯선 사람에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아서 기뻤다. 셋째 날. 이 날은 머릿속에서 ..
2030년 X월 X일 어제 저녁에 종량제 봉투를 사러 편의점에 갔다. 큰 골목 전봇대 밑에 커플 한 쌍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쑥스러워서 곁눈으로만 슬쩍 보고 얼른 걸었다. 대학생 정도 되어 보였다. ‘좋을 때다. 나도 10년 전에는 말이야…’ 그러다 얼른 정신 차렸다. 종량제 봉투와 딸아이 초콜릿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남들이 코로나바이러스를 걱정하던 시절 나는 한창 내 미래를 걱정했었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그동안 강산은 차치하더라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는 눈이 예쁜 사람과 결혼했다. 눈웃음이 깊고 키가 아담한 게 다람쥐를 닮았다. 우리는 30년을 만난 것 같으면서도 30일을 만난 것 같다. 같이 있을 때 설레면서도 편안하다. 어제는 같이 순댓국을 먹었다. 보통 딸은 아빠를 닮는다고 해서 아내 배 속에 딸이..
나보르스키처럼 씩씩하게 <터미널, 2004> 은 공항에 갇히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나보르스키의 국가는 쿠데타가 일어나고 미국은 나보르스키의 비자를 취소시킵니다. 막 미국 공항에 도착한 그는 미국 땅을 밟지도, 다시 비행기를 타지도 못하고 9개월을 공항 플랫폼에서 지냅니다. 그래도 주인공은 씩씩합니다. 딱한 사정을 생각하면 주눅 들거나 무기력할 법도 한데, 그는 공항 직원들과 친구가 되고 일거리를 만듭니다. 심지어 어여쁜 승무원과 사랑 비슷한 것을 나눕니다. 여권이 말소되어 공항에 갇혀있는데 말입니다. 그가 뉴욕에 가려는 목표는 하나입니다. 생전에 재즈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위해 재즈 연주가의 사인을 받는 것. 주인공은 영화 말미에 마침내 하루 비자를 받아 재즈 연주가의 사인을 받고 귀국합니다. 참 씩씩합니다.나도 씩씩해질 겁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읽다 그녀는 웃으면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세 차례 내뿜는 동안 잠자코 카운터의 나뭇결을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5년 전에 뇌종양으로 돌아가셨어. 아주 지독했어. 꼬박 2년 동안 고생하셨지. 우리는 그 때문에 돈을 몽땅 써버렸어.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거야. 더군다나 식구들은 모두 지쳐서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흔히 있는 얘기지. 안 그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신경질적으로 웃으며 진저에일 잔을 옆으로 밀어놓았다. “가족을 헐뜯는 건 분명 좋은 일은 아닌가 봐. 기분이 우울하네” “신경 쓸 것 없어. 누구나 뭐가 됐든 문젯거리를 끌어안고 사는 법이니까” “너도 그래?” “그럼. 언제나 셰이빙 크림 통을 움켜잡고 엉엉 운다구” 그녀는 즐거운 듯이 웃었다. 몇..
정욱원의 읽을 만한 책 추천 - 1 파울로 코엘료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47p 낙담과 우울에 치여 살던 나에게 꿈을 가르쳐 준 책이다. 동화처럼 술술 읽히지만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정이 일어난다. 자아의 신화를 이루어내는 것은 오로지 본인의 몫이다. “무엇을 하는지는 중요치 않네.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은 늘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니 다만 대게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지” 253p 난 글을 쓸 때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다. 이 것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누구나 자아의 신화를 꼭 찾길 바란다..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를 읽다 게르버자우에서 나고 자란 크눌프는 행복한 유년시절을 지나 조숙한 사춘기에 접어들어 이성에 눈을 뜬다. 그가 사모했던 프란치스카는 자신은 기술자나 노동자를 좋아하기에, 크눌프가 라틴어 학교를 그만두면 그와 사귀겠다고 약속한다. 이에 크눌프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범생 역할을 그만두고 독일어 학교로 전학을 간다. 하지만 프란치스카는 그를 배반하고 그 달콤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절망과 믿음에 대한 배신은 그를 정상적인 삶에서 추방시킨다. 모든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것과 섞을 수는 없어.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다가갈 수도 있고 함께 이야기할 수도 있고 가까이 함께 서 있을 수도 있지.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각자 자기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꽃과도 같아서..